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퇴계선생 언행록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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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2-09-28 04:14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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□ 법련이 죽고 난 뒤 정일이란 중이 계속 일을 맡아 영건하였다. 그 뒤 다시 도산 남동으로 가서 5언고시를 짓고 마침내 서당을 이곳으로 옮기시고자 하였다. 그리하여 중 법련에게 그 일을 맡아보라고 청하였는데, 준공이 되기 전 무오년(1558) 7월에 선생께서 나라의 부름을 받아 서울로 가시면서 집의 청사진[옥사도자]한 부를 벽오 이장[이문량의 호. 자는 대성. 농암의 아들]에게 주면서 법련에게 시키는 대로 일을 마무리하게 하였다. 당을 꼭 정남향방으로 한 까닭은 행례에 편하고자 함이고, 재를 꼭 서쪽으로 한 것은 원포를 마주하여 그윽한 운치를 숭상함이다.

성재 금란수의 「도산서당영건기사」*□ 정사년(1557)에 선생께서 도산 남쪽에 서당터를 잡으시고, 느낌을 적은 ... , 퇴계선생 언행록기타레포트 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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레포트/기타


성재 금란수의 「도산서당영건기사」*

□ 정사년(1557)에 선생께서 도산 남쪽에 서당터를 잡으시고, 느낌을 적은 시 두 수를 지으셨다. 헌(암)은 「암서」요, 재는 「완락」인데 합하여 「도산서당」이라 편액하였다. 그 밖의 방실·주장(곳간)·문호는 각기 뜻한 바가 있다아 걸어놓은 편액은 모두 선생의 필적인데, 「경재잠」·&…(투비컨티뉴드 )


□ 정사년(1557)에 선생께서 도산 남쪽에 서당터를 잡으시고, 느낌을 적은 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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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재 금란수의 「도산서당영건기사」*
퇴계선생 언행록



순서

설명
다. 서당의 서쪽에 정사 8간을 지었는데, 헌은 「관란」이고 재는 「시습」이고, 요는 「지숙」이니 「롱운정사」라 이름하였다. 또 조사경(목)에게 준 편지에 「도산정사의 터를 잡은 것은 만년에 가장 큰 관심사로서 법련이 스스로 담당하여 내가 돌아가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일을 마쳤으면 하였더니, 이제 들으니 법련이 죽었다니 이런 몹쓸 일이 있을 줄이야……」하였다. 나[란수]에게 주신 글에, 「도산의 일은 중이 일을 맡아 기와를 입히는 등 곧 마칠 듯 싶으나 어찌 법련과 같은 굳센 성심으로 담당할 수 있으리요?」하였다.

□ 경신년(1660) 7월에 공사를 처음 하여 11월에 서당이 준공되었는데, 당은 모두 3간이었다.
REPORT 73(sv75)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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